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춘검(春劍) 서촉도광(西蜀道光)
마오쩌뚱(毛澤東/1893~1976) 집권기 중 10년 동안은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던 중국문화대혁명(1966~1976)을 거치게 되는데, 이 10년의 기간은 장구한 난 역사를 가진 중국 난계의 암흑기로, 난초란 한낱 부르주아(bourgeois)의 전유물로 치부되어 전시회는 물론이고, 많은 난들이 몰수되거나 불타 없어지는 등 말살되어 적지 않은 품종이 거의 절멸 상태에 이르는 수난기를 겪으면서 크게 위축되었는데, 난초를 몰래 뒷산으로 피난시켜 심어두고 관리하다가 문화대혁명의 쓰나미가 지난 후 다시 캐왔다는 무용담같은 일화가 전해올 정도였다.
춘검 서촉도광(西蜀道光)은 그 대표적인 품종으로 문화혁명 말기에는 겨우 30여촉 밖에 남아있지 않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니, 그 세월의 무게와 풍파를 견뎌내고 극적으로 전해지는 대표적 명화 중 하나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.
서촉도광은 청나라 도광시대 중국 도교 발상지인 사천의 청성산(靑城山)에서 발견되었으니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, 처음에는 최초 발견자의 성을 따 '서가아황(徐家牙黄)'이라 불렀고, 관현지(灌县志)에는 ‘청성산소심’이라 소개되는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다가, 도교의 선(禪)의 의미를 다시 취하고 옛 촉나라 땅에서 도광시대에 발견되었다는 의미를 담아 1990년에 서촉도광(西蜀道光)으로 명명하였고, 1989년에는 홍콩에서 열린 세계난화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며,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해 길러볼 수 있는 춘검란의 대표적 소심 중 하나이다.
한국춘란의 시각으로 본다면 완전한 황화도, 그렇다고 녹화도 아닌 색이어서 아황소(牙黃素)로 소개되고 있으며, 꽃이 핀 이후 꽃대가 더 오르긴 하지만 다른 춘검보다는 꽃대가
약간 덜 오르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.
꽃은 연두색으로 피기 시작하여 이후 시일이 지나면서 차츰 은은한 노랑에 가깝게 되는데, 특히 비두와 예주, 설판의 색이 더 노란 특징이 있다.
다른 춘검과는 달리 4~5화 정도로 주렁주렁 핀 서촉도광은 거의 드물고, 대개 2~3화 정도가 보통이다.
중국춘란류들은 이르면 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보통 3월까지 향을 토하며 개화하는데 춘검도 이와 같다.
<춘검 취하소(翠荷素)>
일경구화나 연판란, 두판란 중 무향인 개체와 마찬가지로 춘검도 잎 기부의 붙음매가 없으며, 귀주와 운남 일부 지역 등 타지역에도 아주 자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춘검은 거의 쓰촨(四川)성에서 나오므로, 천란(川蘭/사천성에는 나오는 난초들)의 대표종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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